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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제 인사이트

[본능 역행 001] 계좌가 파란색이면,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은 짐승이 된다

by psi700 2026. 3. 3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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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<타짜>와 내 비겁한 손가락

영화 <타짜>를 보면 아귀가 자기 손목을 걸잖아요?
예전엔 그 장면을 보면서 참 무식하다고 생각했습니다.

"무슨 도박에 인생을 걸어? 참 대책 없는 인간이네."
라며 혀를 찼죠.

근데 요즘 제 꼴을 보니까 제가 바로 그 무식한 놈이더라고요.
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.

MTS 앱 켜고 파란색 숫자들이 주르륵 뜰 때, 제 기분이 딱 그랬거든요.
돈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것 같은 공포.

저 또한 그 무식하다고 욕했던 영화 속 인물과 다를 바 없이,
이성을 잃고 행동하고 있었습니다.

 

영화 '타짜'의 아귀 스틸컷

(출처:영화<타짜> 스틸컷,비영리적 리뷰 및 정보공유 목적)

 

 

 

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라, 뇌가 원래 아픈 거래요

저도 처음엔 제가 의지가 약하고 머리가 나빠서 자꾸 손절 타이밍을 놓치는 줄 알았습니다.
매일 밤 이불 킥하며 자책도 많이 했죠.

근데 너무 답답해서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.
우리 속에 '뇌도'라는 부위가 있답니다.

여기가 뭐 하는 데냐면, 우리가 뜨거운 냄비에 데었을 때
"아 뜨거!" 하고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통증 센터래요.

근데 비극적이게도, 우리 계좌가 박살 날 때 우리 뇌가 이 통증 센터를 가동한답니다.
그러니까 파란색 계좌를 보는 순간, 우리 뇌는 지금 물리적인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진짜로 착각하는 겁니다.

뇌가 비명을 지르며 아파 죽겠다는데, 거기서 무슨 이성적인 판단이 되겠습니까?
그냥 눈앞이 하얘지는 게 당연한 거죠.
저도 그땐 그냥 이성을 잃은 짐승이었던 겁니다.

 

주식 차트의 하락을 보며 괴로워하는 투자자

(뇌가 비명을 지르는 통증 앞에서는 그 어떤 냉정함도 무너집니다.)

 

 

'공부'라는 이름의 비겁한 도망

심리학 하는 분들은 이걸 '손실 회피 편향'이라는 어려운 말로 부르더라고요.
쉽게 말해, 우리는 벌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을 2배 넘게 세게 느낀다는 겁니다.

저도 그랬습니다. 그 고통을 마주하기 싫어서, 손절 버튼 누르는 게 너무 무서워서,
갑자기 안 하던 기업 분석을 시작합니다.

"아냐, 이 회사는 비전이 있어. 내가 공부해보니 이건 일시적인 하락이야."

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건 공부가 아니라,
뇌가 너무 아픈 걸 잊어보려고 부린 희망 회로였던 거죠.
그렇게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밤잠 설쳤던 날들이 수두룩합니다.

 

 

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

첫째, 계좌 보고 가슴 답답한 거, 그거 당연한 겁니다.
내 뇌가 지금 얻어맞고 있는 중이라서 아픈 것뿐입니다. 남들 다 아는 척하면서 쿨한 척할 때, 저는 그냥 인정해 버리기로 했습니다.

둘째, 제 뇌가 아직 원시인이라서 그렇습니다.
제 유전자는 맹수한테 안 잡아먹히려고 설계된 거지, 나스닥 차트 보고 냉정하게 손절하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요.

셋째, 이 가짜 통증에 휘둘리지 않는 훈련을 시작할 겁니다.
완벽한 기법을 찾는 여행은 끝내고, 마음이 요동칠 때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부터 하려 합니다.

오늘 밤에도 저는 계좌를 엽니다. 여전히 쓰리고 아픕니다.
하지만 이제는 "아, 내 뇌가 열심히 비명을 지르고 있구나"라며 비웃어 주고 넘어가며,
그 시퍼런 숫자가 제 인격까지 깎아내리게 두지는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.

 

안개 낀 고요한 새벽 숲길, 평온한 결심의 시각화.

(숫자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, 그 첫 번째 기록을 마칩니다.)

 

 

내일은 이 멍청한 뇌를 데리고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정글에서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을지,

[002] 원시인의 뇌로 살아남는 법을 적어 보겠습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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